오류를 지적해주신 이름모를 분께 감사드립니다 獨龍의 史談과 無骨雜說

(수정 및 추가)뉴데일리의 교묘하지만 개 뭣같은 대마도 드립



위는 제가 새벽에 올린 포스팅입니다.

위 포스팅에서 저는 기사에 적힌 계림을 찾지 못했으며 대마도가 경상도에 예속되어있다고 적힌 것을 세종실록에서 찾지 못했다고 적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분께서 세종실록에 대마도가 경상도에 속한다고 기록되어있다는 것을 알려주셔서 급히 확인을 했습니다.

아래가 바로 지적하신 부분입니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4권, 1년(1419 기해 / 명 영락(永樂) 17년) 7월 17일(경신) 5번째기사

上王命兵曹判書趙末生, 致書于對馬島守護都都熊瓦曰:
本曹啓奉宣旨, 若曰; “天之生斯民也, 氣以成形, 理亦賦焉, 而作善則降之百祥; 作不善則降之百殃。 古昔帝王奉若天道, 敎民稼穡, 樹藝五穀, 以養其形. 因其固有之義理, 而開道之, 以淑其心, 若有强梗不率, 殺越人于貨, 愍不畏死者, 小則刑戮, 大則征伐, 堯、舜、三王, 君人之道, 如是而已. 對馬爲島, 隷於慶尙道之雞林, 本是我國之地, 載在文籍, 昭然可考。 第以其地甚小, 又在海中, 阻於往來, 民不居焉. 於是, 倭奴之黜於其國而無所歸者, 咸來投集, 以爲窟穴, 或時竊發, 刦掠平民, 攘奪錢穀, 因肆賊殺孤寡人妻子, 焚蕩人室廬, 窮凶極惡, 積有年紀. 惟我太祖康獻大王以至仁神武, 應天革命, 肇造家邦, 市肆不易, 而大業以定, 此雖湯、武之盛, 何以加哉? 國勢大張, 兵力堀阜, 穿徹海岳, 騰擲天地, 隆隆殷殷, 凡有血氣者, 莫不慴伏.
于斯時也, 命一褊將, 殄殲對馬之小醜, 有如泰山之壓鳥卵; 賁、育之搏嬰兒. 我太祖乃敷文德, 載戢武威, 示以恩信懷綏之道. 予紹大統, 莅國以來, 克承先志, 益申撫恤, 雖或間有草竊不恭之事, 尙念都都熊瓦之父宗貞茂慕義輸誠, 犯而不較, 每接信使, 館焉以留, 仍命禮曹厚加勞慰. 又念其生理之艱, 許通興利商船, 慶尙道之米粟, 運于馬島者, 歲率數萬餘石, 庶幾養其形體, 以免飢餓; 充其良心, 恥爲草竊, 竝生於天地之間也. 予之用心, 蓋亦勤矣, 不意近者, 忘恩背義, 自作禍胎, 以取覆亡. 然其平日投化及以興利通信而來者與今望風而降者, 竝皆不殺, 分置諸州, 仍給衣食, 以遂其生. 又命邊將率領兵船, 進圍其島, 以待卷土而降, 今其島人, 尙且執迷不悟, 予甚憫焉.
島中之人, 計不下數千, 思其生理, 良用惻然. 島中之地, 類皆石山, 未有肥衍之土, 稼穡樹藝, 無所施功, 將欲乘隙竊發, 盜人財穀, 蓋其平昔所作罪惡, 固已貫盈, 幽則天地山川之神, 默降殃禍; 明則良馬大船、利兵精卒, 水陸之備甚嚴, 焉往而不遭誅戮之患哉? 只有捕魚採藿買賣一事, 乃爲生理所資, 而今已背恩負義, 自絶之矣, 非予先有絶之之心也. 失此三者, 不免飢餓, 坐待死亡而已. 於此爲計, 其亦難矣.
若能飜然悔悟, 卷土來降, 則其都都熊瓦錫之好爵, 頒以厚祿, 其代官等, 如平道全例, 其餘群小, 亦皆優給衣糧, 處之沃饒之地, 咸獲耕稼之利, 齒於吾民, 一視同仁, 俾皆知盜賊之可恥、義理之可悅, 此其自新之路, 生理之所在也。 計不出此, 則卷土率衆, 歸于本國, 其亦可矣. 若乃不歸本國, 不降于我, 尙懷草竊之計, 仍留于島, 則當大備兵船, 厚載糧餉, 環島而攻之, 歷時旣久, 必將自斃.
又若精選勇士十萬餘人, 面面入攻, 則囊中之物, 進退無據, 其必孩稚婦女, 靡有孑遺, 而陸爲烏鳶之食; 水充魚鼈之腹也無疑矣.
嗚呼! 豈不深可(衣)憐也哉? 此其禍福所在, 彰彰明甚, 非茫昧不可究詰之事也. 古人有言曰: ‘禍福無不自己求之者.’ 又曰: ‘十室之邑, 必有忠信.’ 今對馬一島之人, 亦皆有降衷秉彝之性矣。 豈無知時識勢通曉義理者哉? 兵曹其移文對馬島, 諭予至懷, 開其自新之路, 俾免滅亡之禍, 以副予仁愛生民之志.” 敬此, 今將宣旨事宜, 備云前去, 惟足下其思之.
遣投化倭藤賢等五人, 齎往對馬島.

상왕이 병조 판서 조말생에게 명하여, 대마도 수호 도도웅와에게 글을 보내어 말하기를,
“본조가 계하여 선지(宣旨)를 받들어 이르노니, 거기에 이르기를, ‘하늘이 이 백성을 내실 때에 기운으로 형체를 이룩하고, 이치도 또한 품부하여 주었으니, 착한 일을 하면, 백 가지 상서를 내리고, 불선한 일을 하면, 백 가지 재앙을 내리나니, 옛적 제왕이 천도(天道)를 받들어 백성에게 곡식을 심고 거두는 것을 가르쳐서, 오곡을 길러서 그 몸을 기르는 것이다. 그 고유한 의리를 좇아 깨쳐서 인도하여, 그 마음을 착하게 하는 것이니, 만일 굳세게 버티어 굽히지 않고 사람을 재물로써 죽이고 짓밟아서 민망하게도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작으면 형벌하여 죽이고, 크면 정벌하여 없애는 것이 요(堯)·순(舜)과 삼왕의 사람의 임금 노릇하는 법이 이와 같을 뿐이다. 대마도라는 섬은 경상도의 계림(鷄林)에 예속했으니, 본디 우리 나라 땅이란 것이 문적에 실려 있어, 분명히 상고할 수가 있다. 다만 그 땅이 심히 작고, 또 바다 가운데 있어서, 왕래함이 막혀 백성이 살지 않는지라, 이러므로 왜인으로서 그 나라에서 쫓겨나서 갈 곳이 없는 자들이 다 와서, 함께 모여 살아 굴혈을 삼은 것이며, 때로는 도적질로 나서서 평민을 위협하고 노략질하여, 전곡(錢穀)을 약탈하고, 마음대로 고아와 과부, 사람들의 처자를 학살하며, 사람이 사는 집을 불사르니, 흉악 무도함이 여러 해가 되었으나, 우리 태조 강헌 대왕(太祖康獻大王)께서는 지극히 어질고 신무(神武)하시므로, 하늘 뜻에 응하여, 혁명을 일으켜 비로소 집[家]으로 이루어진 나라를 창조하매, 저자와 전포도 변함이 없이 큰 기업(基業)이 정하였졌으니, 이것이 비록 탕임금과 무왕의 성덕이라 할지라도, 어찌 여기에서 더하겠는가.
국세가 크게 확장되고 병력이 뛰어나게 충실하니, 산과 바다를 뚫어서 통하게 할 수도 있고, 천지를 뒤흔들게 할 수도 있으니, 높고도 높으며 성하고도 성함이여, 대저 혈기있는 자 두려워서 굴복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이때를 당하여, 한 편장(褊將)을 명하여, 대마도의 작은 추한 놈들을 섬멸하게 하니, 마치 태산이 까마귀 알을 누르는 것과도 같고, 맹분(孟賁)·하육(夏育)같은 용사가 어린아이를 움키는 것과도 같으나, 우리 태조께서는 도리어 문덕을 펴고, 무위(武威)를 거두시고, 은혜와 신의와 사랑과 편안케 하는 도리를 보이시니, 내가 대통을 이어 나라에 임한 이래로 능히 전왕의 뜻을 이어서, 더욱 백성을 측은한 마음으로 사랑하고, 비록 조그마한 공손하지 못한 일이 간혹 있어도, 오히려 도도웅와의 아비 종정무(宗貞茂)의 의를 사모하고 정성을 다한 것을 생각해서, 범하여도 교계(較計)하지 않았으며, 통신하는 사신을 접할 때마다 사관(使館)을 정하여 머물게 하고, 예조에 명하여 후하게 위로하고, 또 그 생활의 어려움을 생각하여, 이(利)를 꾀하는 상선(商船)의 교통도 허락하였으며, 경상도의 미곡을 대마도로 운수한 것이 해마다 대개 수만 석이 넘었으니, 그것으로 거의 그 몸을 길러 주림을 면하고 그 양심을 확충하여, 도적질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천지 사이에 삶을 같이할까 하였노라. 나의 용심(用心)함도 또한 부지런히 하였더니, 뜻밖에도 요사이 와서 배은 망덕하고 스스로 화근을 지으며, 망함을 스스로 취하고 있으나, 그 평일에 귀화한 자와 이(利)를 얻으려고 〈무역하거나〉 통신 관계로 온 자와, 또 이제 우리의 위풍(威風)에 따라 항복한 자는 아울러 다 죽이지 아니하고, 여러 고을에 나누어 두고서 먹을 것 입을 것을 주어서 그 생활을 하게 한 것이며, 또 변방 장수에게 명하여, 병선을 영솔하고 나아가서 그 섬을 포위하고 모두 휩쓸어와 항복하기를 기다렸더니, 지금까지도 그 섬 사람들은 오히려 이럴까 저럴까 하며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내 심히 민망히 여긴다. 섬 가운데 사람들은 수천에 불과하나, 그 생활을 생각하면, 참으로 측은하다. 섬 가운데 땅이 거의 다 돌산이고 비옥한 토지는 없다. 농사하여 곡식과 나무를 가꾸어서 거두는 것으로 공(功)을 시험할 곳이 없으므로, 장차 틈만 있으면, 남몰래 도적질하거나, 남의 재물과 곡식을 훔치려 하는 것이 대개 그 평시에 저지른 죄악이며, 그 죄악이 벌써부터 가득차 있는지라, 어두운 곳에서는 천지와 산천의 신이 묵묵히 앙화를 내리고, 밝은 곳에서는 날랜 말과 큰 배며, 날카로운 병기와 날쌘 군사로써 수륙의 방비가 심히 엄하니, 어디가서 주륙(誅戮)의 환을 만나지 아니할 것인가. 다만 고기 잡고, 미역 따고 하여 매매하는 일은 이에 생활의 자료가 되는 바인데, 이제 와서는 이미 배은하고 의를 버려 스스로 끊는 것이며, 내가 먼저 끊을 마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 세 가지를 잃은 자는 기아를 면치 못할 것이며, 앉아서 죽기를 기다릴 뿐이니, 이에 대하여 계책하기도 또한 어려운 일이다.
만약 능히 번연(飜然)히 깨닫고 다 휩쓸어 와서 항복하면, 도도웅와는 좋은 벼슬을 줄 것이며, 두터운 녹도 나누어 줄 것이요, 나머지 대관들은 평도전(平道全)의 예와 같이 할 것이며, 그 나머지 여러 군소(群小)들도 또한 다 옷과 양식을 넉넉히 주어서, 비옥한 땅에 살게 하고, 다 같이 갈고 심는 일을 얻게 하여, 우리 백성과 꼭 같이 보고 같이 사랑하게 하여, 도적이 되는 것이 부끄러운 것임과 의리를 지키는 것이 기쁜 일임을 다 알게 하여, 이것이 스스로 새롭게 하는 길이며, 생활하여 갈 도리가 있게 되는 것이라, 이 계책에서 나가지 아니한다면, 차라리 무리를 다 휩쓸어서 이끌고 본국에 돌아가는 것도 그 또한 옳을 일이어늘, 만일 본국에 돌아가지도 아니하고 우리에게 항복도 아니하고, 아직도 도적질할 마음만 품고 섬에 머물러 있으면, 마땅히 병선을 크게 갖추어 군량을 많이 싣고 섬을 에워싸고 쳐서 오랜 시일이 지나게 되면, 반드시 장차 스스로 다 죽고 말 것이며, 또 만일 용사 10여 만명을 뽑아서 방방곡곡으로 들어가 치면, 주머니 속에 든 물건과 같이 오도가도 못하여, 반드시 어린이와 부녀자까지도 하나도 남지 않을 뿐만 아니라, 육지에서는 까마귀와 소리개의 밥이 되고, 물에서는 물고기와 자라의 배를 채우게 될 것이 의심 없으니, 아, 어찌 깊이 불쌍히 여길 바 아니겠는가, 이것은 화복의 소재가 소소하게 밝은 일이어서, 망매(茫昧)하여 분명치 못하거나 궁구하여도 끝까지 모를 일이 아니다. 옛 사람의 말에, 「화와 복은 자기 스스로가 구하지 않는 것이 없다.」 하였고, 또 말하기를, 「열 집만이 사는 고을에도 반드시 충신(忠信) 한 사람은 있다.」 하였으니, 이제 대마도 한 섬 사람에도 역시 다 하늘에서 내린 윤리와 도덕의 성품이 있을 것이니, 어찌 시세(時勢)를 알고 의리에 통하여 깨닫는 사람이 없겠는가.
병조는 글[書]을 대마도에 보내어, 나의 지극한 생각을 알려서, 그 자신(自新)할 길을 열어 멸망의 화를 면하게 하고, 나의 생민(生民)을 사랑하는 뜻에 맞도록 하라.’ 하였다. 이제 선지(宣旨)로써 일의 마땅함을 자세히 알게 하노니, 오직 족하(足下)는 잘 생각하라.”
하고, 귀화한 왜인 등현(藤賢) 등 5인에게 이 글을 가지고 대마도로 가게 하였다.



분명 기사와 같이 세종실록에 계림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포스팅을 할때 미쳐 보지 못하고 빠트린 부분을 지적해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알려주신 부분을 살펴본 결과 글의 핵심 논지에 반한다고 보이지 않습니다. 알려주신 부분은 제가 제시한 첫번째와 두번째 기사 사이에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며 동시에 대마도에 조선의 백성이 들어가 살지 않고 왜구의 활동거점화 함을 보여주고 있기때문입니다.

따라서 제가 정정한 부분은 세종실록에서 계림을 언급한 것을 못찾겠다는 부분과 세종실록을 편집했다고 하는 부분이 되었으며,

그럼에도 상기 포스팅 결론 부분, 즉 뉴데일리와 이승만 연구소가 세종실록의 대마도 관련 부분을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왜곡, 이용하고 있다는 주장은 철회할 것이 아니라고 판단됩니다.



마지막으로

저의 미흡한 부분을 지적해 주신 이름모를 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덧. 알려주신 덧글을 삭제를 하시는 바람에 닉네임을 제가 기억을 하지 못했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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